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버트런드 러셀 (문단 편집) == 여담 == * 이 사람의 인생에 관해 자세히 다룬 그리스산 만화책이 나왔다. 제목은 로지코믹스. 로직+코믹스다. 이 사람의 인생과 같이 수리논리학의 목적에 관해 개괄적으로 다루면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비트겐슈타인]]이나 괴델, 힐베르트, 푸앵카레[* 푸앵카레와 러셀은 20세기 초에 수학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두고 박 터지게 싸운 전력이 있다. (이때의 논쟁 때문에 푸앵카레가 수학적 직관주의의 시초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푸앵카레가 논쟁 도중에 죽자 러셀은 [[고인드립]]을 쳤다. 그러나 푸앵카레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비판 때문인지 수학의 기초에 관해서는 독단적이었던 러셀의 태도가 이후에 약간 부드러워졌다.] 등 유명한 수학자들도 매우 많이 나온다. 20세기 초반의 수학사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다만 이 책은 실증적인 러셀의 일대기는 아님에 유의하자. 서두에서 지은이들이 스스로 밝히듯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니며, " 만화 형식의 소설"이다. 어디까지나 20세기 수리논리학의 발전 과정을 살피고 그 의의를 곱씹어 보려는 목적으로 핵심 인물인 러셀을 편의상 재구성한 측면이 많다. 예컨대 러셀과 몇 유럽 수학자들이 실제로는 편지 왕래 선에서의 교류에 그쳤으나 책에서는 그들 간 실제 만남이 있었던 것으로 각색하는 등이다. 그리고 러셀은 이 당시 실제로는 웃기는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 [[칼 포퍼]]는 러셀을 '[[임마누엘 칸트|칸트]] 이후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추켜세웠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논리학의 가장 큰 공헌자'라고도 찬양했는데 이는 [[존 폰 노이만]]의 차용으로 보인다. 노이만은 [[쿠르트 괴델]]을 가리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가장 위대한 논리학자'라고 극찬한 적이 있다. 러셀도 칼 포퍼를 언급한 것이 있는데, 《인기 없는 수필》 등에서 언급했다. 특히 《인기 없는 수필》에서는 포퍼가 일전에 러셀 자신이 《서양철학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열린 사회와 그 적들|플라톤을 멋지게 아주 잘 깠다며]] 칭찬한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처럼 러셀 역시 [[사회주의]]자였다. 다만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소련식 [[현실사회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고, 국가의 기능을 축소하고 민중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자치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길드 사회주의'를 지지하였다. 그의 정치적 견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당시의 좌파사상([[마르크스주의]], [[아나키즘]], 노동조합주의)와 러셀 자신의 정치사상을 정리한 책인 '자유로 가는 길'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2020년에 부크크출판사에서 인간 해방의 꿈이라는 생뚱맞은 제목으로 공산당 선언을 동봉해 출간했다. * 흑역사(?)로 그는 위험한 발언을 했는데 1929년 저서 결혼과 성에서 "정신적 결함이 있는 자는 단종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나치 독일|나치]]의 [[우생학]] 정책에 영향을 주었다. * 위에 소개된 것처럼 러셀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만큼 문체가 매우 수려하다. 그래서 러셀이 쓴 책을 원서로 읽어보는 것도 영어를 공부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비록 그의 어휘력이나 문장구조를 보면 요즘 책에서 거의 볼 수 없는 단어나 구조도 자주 튀어나오긴 하지만 수준높은 영어교재로 러셀의 저서를 쓸 수도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희한한 악몽을 꾼 적 있는데, 어떤 거대한 도서관의 한 사서가 책을 하나하나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쓰레기통에 버릴건지 그대로 둘 건지 결정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집어든 책이 자신과 화이트헤드의 역작인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였는데, 이 책의 온통 알아볼 수 없는 내용들의 기호에 깜짝 놀란 사서가 이 책을 버려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러셀 백작가의 표어는 "[[케세라세라]]"다.[[https://en.wikipedia.org/wiki/Earl_Russell|#]] 정확히는 라틴어 Che Sera Sera인데 의미는 스페인어 Qué será será와 같다. * 어릴 적 러셀은 [[지구 평면설|지구가 평평했다고 믿었다.]]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들 모두 지구가 둥글다고 이해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고지능자]]의 특성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자기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남의 말을 순순히 듣지 않는다. 충분한 지능과 지식이 갖춰져 있다면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태도가 될 수 있지만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그렇지 않으면 똥고집이 될 뿐이다만]]. 물론 제대로 성장한 뒤의 러셀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전자의 경우가 되었다.] 그러나 러셀은 신부님의 말씀은 잘 믿는 성격이였다. 그래서 특별히 신부님께 부탁해 겨우 러셀을 설득시켰다고 한다. [* 이때 신부님이 수학자 [[화이트헤드]]의 아버지였다.] * 동양철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 듯하나 그리 좋은 인상으로 보이진 않은 모양이다. 저작물 《나는 이렇게 믿는다》에 보면 [[노자]]의 자연사상을 그저 그가 구시대적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평한다. 정확히 말하면 노자나 루소의 자연회귀 사상에서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그 작자가 익숙해 있는 것에 불과하고, 그들이 사악한 인위라 부르는 것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 평했다. 즉, 노자는 길이나 다리, 나룻배로 통행을 편하게 하는 것이 인위로써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옷을 입거나 불로 음식을 익혀먹는 것과 같은 인위는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므로 인위로 보지 않았다는 논리이다[* 사실 What I Believe 자체가 러셀에게 불리한 내용만 발췌되어 이리저리 써먹힌 글이기도 하다. 때문에 주의 요망.]. 사실 러셀의 스타일을 생각해보면 노자 비판은 매우 온건한 편이다. 러셀은 논리가 없거나 논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내용은 온갖 비아냥[*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헤겔]]에서 정점을 찍는다,]을 담아서 까던 사람인데 노자의 철학에 대해서는 "공감은 가지만 종국에는 동의할 수 없는 사상"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노자의 철학은 단지 일상적인 인위 무위라는 단어로 이해할 수 있는 측면 뿐만이 아니라 상당히 정치철학적인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간단하고 이해하기 편한 예를 들어본다면, 노장 사상으로 대표되는 [[도가]]철학 자체가 (다른 제자백가의 철학들과 마찬가지로)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속에서 성립하여 발전한 것임을 생각해야 한다. 즉, [[제자백가]]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상 체계들이 그러하듯 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 철학 역시 '혼란과 고통으로 가득한 시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 이 면에서 보면 노자가 비판한 인위란 다른 무엇보다도 '복잡고도화된 권력구조와 그 산물' 이다. 말하자면 "나라 다스리기 힘들다고? 니가 권력을 강화하려고 자꾸 복잡한 체제를 만드니까 다루기 힘들어지는 거지. 제대로 통제할수도 없는 복잡한 권력구조를 만들지 말고 단순한 구조(소국과민)를 유지하면 문제없이 자연스럽게 다스릴 수 있을걸? 그리고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고 억지로 선을 그어 구별하려고 들지 말고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면 전쟁할 일도 없어!" 라는 주장인 셈. 길이나 다리, 나룻배에 거부감을 드러낸 것 역시, 당시 사회에서 길을 뚫고 다리를 놓으려면 무엇이 필요했을지 생각해 보자. 당연히 백성들에게 [[부역]]을 강요해야 하고, 부역을 강요당한 백성들은 당연히 화를 낼 것이며, 어쩌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진시황]]의 대운하나 [[송휘종]]의 화석강 같은 예를 보더라도, 전근대 사회에서 부역의 강요는 반란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던 것. 이 쪽으로 보면 [[아나키즘]] 이나 야경국가론 같은 근현대 정치사상과도 상당한 공통점이 있는 명확한 정치사상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노장사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 하나일 뿐이고 조금 과도하게 단순화시킨 면이 있긴 하지만... 어쨌건 노장사상은 '세상에 신경끊고 산에 들어가서 나물 뜯어 먹으니까 마시쪙!' 하는 현실도피적 사상이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라는 것.]. * 반면에 《러셀, 북경에 가다》라는 책에서는 동양철학에 대해 매우 호의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후 자신의 책에 '''[[서양]]''' [[철학]]사라는 제목을 붙인 것만 봐도 동양철학에 대해 존중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얼핏 보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기존 유럽-영미 철학자들이 저술한 책의 제목은 예외 없이 '철학사'였다.[* '기존' 뿐만 아니라 러셀 이후에도 이런식의 작명은 여전히 있다. 가령 서양철학사 서적 중에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코플스턴의 철학사의 경우 western이라는 말 자체가 없고 그냥 'History of Philosophy'이다.] 즉 [[고대 그리스]] 철학-[[스콜라 철학]]-합리론과 경험론 등으로 이어지는 서양철학의 연쇄적인 역사를 철학의 역사 자체로 받아들였다는 것. 유럽의 역사를 기술한 다음 '세계사'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러셀은 중국을 방문하면서 동양에 독자적이고 심원한 철학 체계가 이미 성립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서양철학사를 기술하면서 굳이 '서양'철학사라고 강조한 것이다.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는 예수의 말이 이미 [[노자]], [[석가모니]]에 의해 벌써 나왔던 사상임을 강조했다. 성현들의 가르침이 일치하는 점이 많다는 사실은 기독교 신학자들 역시 주목하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러셀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복음서에 드러난 예수의 인간적인 약점을 지적하면서, 인격적 측면에서 볼 때 차라리 다른 성현들이 보다 성인에 가까운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번역은 나와 있고 분량도 적절하게 적지만 '[[무화과 나무에 저주를 내리다]]'의 예시는 현대 기독교파에서 반대의견을 찾을 수 있다. 사실 종교학자가 아니다 보니 근거 없는 소리도 꽤 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서양철학사에서 칼뱅이 천동설을 옹호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최초 원문 출처가 불명확한 [[카더라]]일 뿐이었다[* 꼴통 [[예수쟁이]]라는 인식이 있는 [[장 칼뱅]]은 오히려 그런 예수쟁이들이 피꺼솟하게 할 정도로 과학기술의 발전을 적극 옹호했는데, 그가 [[스위스]]의 시계 제작 산업의 첫 디딤돌을 놓은 사람이라는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지동설은 그때에는 아직 체계적인 근거가 부족했다.]. 러셀이 신학자가 아닌 만큼 종교적 지식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엉뚱한 주장을 한 건 비판받아 마땅하다. * [[비틀즈]] 소속으로, 또한 싱어송라이터로서도 매우 유명한 [[폴 매카트니]]가 한 토크쇼에서 비틀즈 멤버들, 특히 [[존 레논]]의 반전주의, 평화주의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N3m2r0Ln0rU&t=29s|#]] 당시 러셀은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는 주장을 하곤했는데 그 당시 런던에서 폴이 그를 실제로 만나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그날 밤, 스튜디오에서 비틀즈 멤버들과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비틀즈는 이후에 공식적인 인터뷰에서 [[베트남전쟁]]에 반대했다. * 상술한 것처럼 러셀은 자신의 백작 작위를 냉소적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손자인 7대 백작이 아들 없이 죽으면 러셀 백작 작위는 단절될 예정이다. 사실 본가는 베드포드 공작이고 러셀 백작은 방계 집안 작위라... [각주] [[분류:영국의 현대 철학자]][[분류:영국의 수학자]][[분류:영국의 역사학자]][[분류:영국의 사회운동가]][[분류:영국 남성 작가]][[분류:영국의 백작]][[분류:노벨문학상 수상자]][[분류:1872년 출생]][[분류:영국의 무종교인]][[분류:케임브리지 대학교 출신/트리니티 컬리지]][[분류:런던 정치경제대학교 재직]][[분류:1970년 사망]][[분류:인플루엔자로 죽은 인물]][[분류:몬머스셔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